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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재 SKC 사장 "SKC는 막 발사된 우주선, 가속해야 정상 궤도"
2020-04-21

한국경제 ('20.3.31)

https://www.hankyung.com/economy/article/2020033156011


CEO 탐구- SKC 이완재 사장 


"화학회사를 모빌리티 소재 회사로 바꾼 혁신가"​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우주선이 지구를 벗어나려면 빠른 속도로 중력을 이겨내야 합니다. 2단계 추진에 성공해야 대기권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완재 SKC 사장은 회사를 이제 막 발사에 성공한 우주선에 비유했다. SKC는 올해 초 숙원이던 동박 제조사 KCFT 인수를 끝냈다. 동박은 구리를 얇게 만든 막으로 배터리 음극재에 쓰이는 핵심 소재다. SKC가 필름·화학회사에서 전기자동차 소재회사로 거듭나는 축포를 쏘아 올렸지만 이 사장은 “지금은 자축할 때가 아니다”며 재도약을 주문했다.


그의 속도경영에 맞춰 SKC는 2단계 발사를 실행했다. 3월 초 815억원을 투입해 KCFT 공장 증설에 나섰다. 미국 중국 유럽 시장에 공장을 건설하는 계획도 추진 중이다. 이 사장은 “2020년은 수년간 추진해온 사업모델 혁신이 결실을 보는 해”라며 “어떤 난관도 뚫고 나간다는 각오로 혁신을 이어가자”고 강조했다.


전격전이었다. 이 사장이 이끄는 SKC는 지난해 3개 전선에서 동시다발로 움직였다. 쿠웨이트 국영석유기업 PIC와 화학사업 글로벌 합작사를 설립했다. 이어 코오롱인더스트리와 각사의 폴리이미드(PI)필름 사업을 현물 출자해 세운 합작사인 SKC코오롱PI 지분을 매각해 1조원이 넘는 재원을 확보했다. KCFT를 인수하고 전기차 배터리 소재·기술에 집중 투자했다. 회사의 체질을 완전히 바꿀 만한 세 가지 혁신을 동시에 이뤘다.


이 사장이 처음부터 과감하게 움직였던 것은 아니다. 2016년 SKC 사장으로 부임했을 때 그는 “생존의 위기를 느꼈다”고 했다. 회사 이익의 70~80%를 차지하던 프로필렌옥사이드(PO) 프로필렌글리콜(PG) 등 화학소재사업에 국내 정유업체가 뛰어들었고 중국 업체들과의 경쟁이 심해지면서 회사는 벼랑 끝에 내몰렸다.


이 사장은 조바심을 내지 않고 부임 후 1년 반 동안 공부에 매진했다. 계속 잘할 수 있는 사업, 새로 시작해야 하는 사업, 축소해야 하는 사업으로 나눠 분석했다. 신성장 동력 찾기에도 골몰했다. 수많은 회의 끝에 2차전지 분야를 신성장 동력으로 정한 뒤 SKC가 잘할 수 있는 소재가 무엇인지 각 사업분야를 하나하나 분석했다.


공부를 끝낸 이 사장은 2017년 6월 서울 중학동 본사에서 모든 임직원을 모아 놓고 SKC가 나아갈 길을 밝혔다. 평소 중국 고전과 무협지를 즐겨 읽는 이 사장은 장자(莊子)를 인용해 경영 키워드를 ‘탈정(脫井)’으로 제시했다. 탈정은 ‘갇혀 있는 우물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다. 그는 “우물 안 개구리식의 변화가 아니라 환골탈태 수준의 ‘딥체인지(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사장은 “지금까지 우리는 할 수 있는 변화에만 집중했다”며 “기존 사업 틀을 유지한 채 우물을 벗어나지 못했고 개선하는 데에만 신경 썼다”고 지적했다. 이어 “제품, 전략을 부분적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회사와 사업 영역을 통째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1 대 1 협상으로 합작 이끌어


‘풍림화산(風林火山).’ ‘바람처럼 빠르게, 숲처럼 고요하게, 불길처럼 맹렬하게, 산처럼 묵직하게’라는 뜻으로 《손자병법》에 나오는 구절이다. 상황에 따라 군사를 적절하게 운용해야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뜻이다. 물밑에서 조용히 움직이던 이 사장은 방향을 정한 뒤 바람을 탄 불처럼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동안 임원들에게 질문하고 경청하는 데 집중하던 그는 이때부터 직접 전선에 나서 ‘혁신전도사’로 뛰었다.


이 사장은 쿠웨이트 PIC와 글로벌 합작사를 세우기 위해 열 번 이상 비행기를 탔다. 그동안 PIC의 최고경영자(CEO)는 세 번이나 바뀌었다. 작년 3월 PIC와 한국에서 협상할 때의 일이다. 지배구조 등 합작사 구조에 대해 양사 간 의견 차가 줄어들지 않자 상대측 고위임원이 회의실을 떠났다. 협상이 결렬될 위기였다. 이 사장은 PIC 고위임원의 손을 붙잡고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가 1 대 1 협상을 시작했다. 두 시간에 걸친 협상 끝에 양측은 합의안을 끌어냈다. 이후 협상은 급물살을 탔고 8월 본계약 체결에 이르렀다.


이 사장은 온화한 외모와 달리 집요함과 강단을 갖췄다는 게 회사 임원들의 전언이다. 그는 평소 임직원에게 ‘끈기’와 함께 ‘끝장정신’을 강조한다. 어떤 일이든 포기하지 않고 끝장을 본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일할 때는 냉정하지만 술자리에서는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SKC는 2016년 이 사장 부임 이후 크게 달라졌다. 적자였던 필름사업부문과 해외 법인은 흑자로 돌아섰다. 자산은 3조9730억원으로 늘었고 부채비율은 131.4%에서 작년 말 129.0%로 줄었다. 무엇보다 시장의 시선이 달라졌다. 2016년 3만원대 초반이던 주가는 올해 2월 5일 6만500원까지 두 배 이상으로 올랐다. 화학산업에 갇혀 있던 회사에서 2차전지 소재사로 거듭난 SKC의 성장성을 인정했다는 평가다.


이 사장은 안주하지 않고 사업영역을 더 넓히고 있다. 반도체 공정의 핵심 소재인 블랭크 마스크의 국산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는 “그동안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탈정의 각오로 변화를 추진해왔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세계 경기 둔화 우려가 있지만 지금까지 힘을 쏟은 혁신이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